남영동 대공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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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6년 김수근의 설계로 지어져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사용된 건물이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 관련 인사들을 고문하는 장소로 악명 높았으며,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여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2005년 경찰청 인권센터로 개소되었으며, 현재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박종철 기념 전시실과 추모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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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대공분실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
기본 정보 | |
명칭 | 경찰청 대공분실 |
원어 명칭 | 남영동 대공분실/南營洞對共分室 |
완공일 | 1976년 |
용도 | 대공수사, 불법고문, 불법감금, 거짓자백 |
소유주 | |
1976년 ~ 1991년 | 대한민국 내무부 치안본부 |
1991년 ~ 2018년 | 대한민국 경찰청 |
2018년 12월 ~ |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
건축 정보 | |
건축가 | 김수근 |
기타 | |
웹사이트 | 민주인권기념관 |
![]() |
2. 역사
1976년 김수근의 설계와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여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운영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지상 5층 규모였으나, 1983년에 지상 7층으로 증축되었다.
1985년에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가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변명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언론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진상이 드러나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2005년 10월 4일, 한국 경찰청이 역사 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소하였다.[2] 현재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2] 2008년 6월 10일, 인권센터 4층과 5층에 박종철(朴鍾哲) 기념 전시실을 개관하였다.[2]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朴鍾哲拷問致死事件) 현장인 509호실은 박종철 열사 추모 시설이 되어 있다.[2]
2. 1. 군사독재 시절 (1976년 ~ 1987년)
1976년 김수근의 설계와 당시 내무부 장관 김치열의 발주로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하여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운영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지상 5층 규모였으나, 1983년에 지상 7층으로 증축되었다.1985년에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 김근태가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고문을 당했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변명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으나, 언론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진상이 드러나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2. 2. 민주화 이후 (1987년 ~ 현재)
2005년 10월 4일, 한국 경찰청이 역사 청산 사업의 일환으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소하였다.[2] 현재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2] 2008년 6월 10일, 인권센터 4층과 5층에 박종철(朴鍾哲) 기념 전시실을 개관하였다.[2]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朴鍾哲拷問致死事件) 현장인 509호실은 박종철 열사 추모 시설이 되어 있다.[2]3. 건축
남영동 대공분실은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갈월동)에 위치하며, 남영역 인근에 있어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린다.[4] 1976년 당시 내무장관 김치열이 발주하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하였다.[5] 2530평 부지에 본관(7층), 부속 건물(2층), 별관(2층), 테니스 코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4]
건물 외관은 검은색 벽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5층 취조실 창문은 매우 작아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6] 이는 무자비한 고문과 취조의 흔적을 감추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피의자는 건물 후면의 작은 뒷문을 통해 5층 취조실로 곧바로 연결되는 나선 계단을 통해 이동했다.[6] 취조실은 총 15개이며, 밖에서 전등을 끄고 켤 수 있고 문에는 감시용 렌즈가 달려 있다. 취조실 안에는 욕조, 수세식 변기, 침대, 고정된 의자와 책상이 있었고, 영상 보안도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취조실 문들은 서로 마주 보지 않게 설계되어 서로 볼 수 없도록 하였다.[6]
4. 고문
군사독재 시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는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한 고문이 자행되었다. 취조실은 24시간 내내 피의자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고, 변호인 접견권과 같은 기본적인 인권도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혹한 고문이 이어졌다.[7] 1985년 9월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 515호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에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하였다.[7] 김근태가 고문을 당한 일을 소재로 한 영화 《남영동1985》가 2012년 개봉되었다.[8]
남영동 대공분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참고인 진술을 명목으로 연행되어 고문을 받고 사망한 사건 때문이다. 박종철은 1987년 1월 14일 509호 조사실에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9]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고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변명을 내놓아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였다.[9] 이 사건은 당시 왕진을 왔었던 오연상 교수(당시 중앙대학교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교수)가 물고문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사인을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에게 알리면서 진상이 들어나기 시작하였고, 이후 당국이 축소 은폐를 시도하여 수사관 둘만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로 몰아가려고 하자 서울영등포구치소 보안계장 안유가 당시 구치소에 있던 재야인사에게 폭로하였다. 안유의 폭로는 우여곡절을 거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게 전달되었고, 19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미사에서 〈고문 경찰 축소 조작〉을 폭로하여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10]
5. 기념 및 활용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까지 보안분실로 사용되다가, 2005년 10월 4일 경찰청이 과거 청산의 의미로 경찰청 인권센터를 개소하면서 그 역할이 바뀌었다.[11][2] 현재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11]
2008년 6월 10일에는 경찰청 인권센터 4층 및 5층에 박종철 기념전시실이 개관하여 일반인들의 방문을 받고 있다.[11]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현장인 509호실은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11][2]
참조
[1]
웹사이트
민주인권기념관
https://dhrm.or.kr/i[...]
2021-01-18
[2]
웹사이트
박종철 기념전시실
http://futureheritag[...]
[3]
웹인용
민주인권기념관
https://dhrm.or.kr/i[...]
2021-01-18
[4]
뉴스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에서 '인권'으로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5-07-17
[5]
웹사이트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http://www.pressian.[...]
프레시안
2011-11-06
[6]
뉴스
남영驛 담벼락 옆 김근태 고문하던 대공분실이
http://www.asiae.co.[...]
아시아경제
2012-11-30
[7]
뉴스인용
네티즌 사이 다시 회자된 김 의원 고문사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04-06-23
[8]
뉴스
남영동1985, 뒷이야기가 궁금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2-12-12
[9]
웹사이트
박종철고문치사사건
http://encykorea.aks[...]
[10]
뉴스
평범한 사람들이 1987년 6월을 달구다
http://www.sisainliv[...]
시사인
2016-06-24
[11]
웹사이트
박종철 기념전시실
http://futureheritag[...]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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